• [日] 텐쇼 10년 카이레키 문제
    `공부´/`해외의 천문학´ 2020. 12. 30. 00:26

    1. 들어가며

    이 글은 텐쇼 10년(1582년) 일본에서 일어난 카이레키改曆 문제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주로 역법 상의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부득이하게 이번 포스트에서 대부분의 자료는 위키피디아와, 일본의 이 블로그를 참조하였기에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 부분을 제외하고는 《고려사》 선명력 및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열람 가능한 선명력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충분히 검증하였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없이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2. 정치적 이해

    간단히 말하자면, 당시 일본 내에 두 종류의 역서가 존재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조정의 쿄京력과 민간의 미시마력. 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역서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다른 민간 달력도 많았겠지만, 이번 같은 경우 같은 달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붙여 버리는 큰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윤달을 어디에 넣는지에 대한 문제였는데, 쿄력은 윤달을 1583년 윤 1월에 넣었고, 미시마력은 1582년 윤 12월로 계산하였습니다. 일본 내에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달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서를 반포하는 기관인 조정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당시 통일정권을 완성하지 못한 오다 노부나가는 지방에서 제각각인 민간력을 수정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고, 조정에서 작성하는 쿄력을 전례와 같은 방법으로 개력함으로써 반력기관으로서의 조정의 권위를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일본어 위키백과).

    다만 음양사인 츠치미카도 히사나가土御門久脩와 카모노 아키마사賀茂在昌는 여기에 반대를 하였고, 쿄력을 바꾸지 않는 쪽을 지지했다고 했는데(『晴豊記』), 조정의 권위와 상관 없이 정확한 역서를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해 문제가 있었는지는 아직 조사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조정의 음양사들은 이 문제를 두고 오다 노부나가와 대립하였지만, 결국 다음날 발생한 혼노지의 변으로 유야무야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3. 역법 상의 이해

    24절기는 절기節氣와 중기中氣로 나뉘는데, 그 중 동지, 대한, 우수, 춘분, 곡우, 소만, 하지, 대서, 처서, 추분, 상강, 소설 등이 중기에 해당됩니다. 24절기가 각각 365.XX/24 일마다 돌아오므로, 12개의 중기는 각각 365.XX/12 일마다 돌아오게 됩니다.

    윤달이란, 무중치윤無中置閏 - 해당 달의 삭과 다음 삭 사이에 중기가 들어오지 않는 달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추산합니다. 태음태양력을 설명할 때는 메톤 주기라는 개념이 자주 들어오기는 하지만, 사실상 여기에서는 메톤 주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1년에 중기가 열두 번 들어오기 때문에 중기가 들어오지 않는 달을 계산하면 윤달은 알아서 빠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옛 동아시아 역법에서 사용했던 몇 가지 개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달의 평균 삭망월을 누적하여서 구한 삭일을 경삭經朔이라고 하며, 달의 황경이 태양의 황경과 정확하게 겹치는 시각을 정삭定朔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정삭 개념이 중요합니다. 저희가 실제로 쓰는, 썼던 초하루도 정삭이 기준이고요.

    일 미만의 분초까지 계산한 정삭이나 중기의 일 미만 선후와 상관없이, 중기가 정삭보다 먼저 도달해도 1일, 즉 삭이나 초하루가 중기일과 겹치면 해당 달은 중기가 들어오는 달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해가 지면 그 날은 끝나고, 그 날 밤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선명력에서는 삭일이 일몰 시각(이라고는 하지만 대충 오후 6시에 해당하는 시각) 이후가 되면 자동으로 삭일을 다음날로 밀어버리는 진삭(進朔)이라는 것을 도입하였습니다. (수시력에서는 반대로, 현이나 망의 일 미만이 일출 시각 이전이면 삭일을 전날로 올려버리는 퇴망(退望)을 씁니다(유경로 외, 1973).)

    이와 같이 진삭에 의해 정삭의 날짜가 바뀜에 따라서, 그 달에 중기일이 들어오는지 여부가 바뀌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텐쇼 10년 카이레키 이슈였습니다.

     

    진삭을 하지 않은 경우(미시마력)와 진삭을 한 경우(쿄력)의 차이.

    이 문제가 발생한 것은 1583년 윤 1월, 또는 1583년 1월이었습니다. 중기 중 하나인 '우수'가 그 달 초하루에 들어가느냐, 그 전 달 마지막 날에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진삭을 하지 않은, 계산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우수가 초하루에 들어갔으며, 그 전 달에는 중기가 없었습니다. 이 때 중기가 없는 전 달'윤 12월' 이 되며, 중기가 초하루에 들어가는 그 달에는 '우수'라는 중기가 있으므로 윤달이 아닌 '1월' 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산 결과 삭이 되는 시각이 오후 6시 이후였으므로 초하루를 다음날로 밀어야 합니다. 진삭이 적용되면 초하루가 하루 밀리게 되므로, 우수 당일이 그 전달 말일이 되고 우수 다음날이 초하루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전 달에는 중기가 들어가 '1월'이 되며 그 달에는 중기가 들어가지 않게 되어 '윤 1월' 이 되는 것입니다.

    조정 달력에서는 진삭을 적용해서 '윤 1월' 로 계산했고, 민간 달력 중 하나인 미시마력에서는 진삭을 적용하지 않아서 '윤 12월' 로 계산했던 것입니다.

    진삭이라는 개념이 선명력에서 전체적으로 쓰이는 건지, 일본 역도에서만 쓰였던 건지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제가 참고한 일본의 카모노 아키마사를 다루는 블로그의 정보에서는, 마치 관에서는 알고 민간에서는 모르는 방법이었다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따로 확인해본 《고려사》 선명력에서는 분명히 「추분 후 정삭의 소여가 4분의 3일 이상이 되면 1일을 증가한다. 춘분 후 정삭 혼명(昏明)의 소여가 춘분 초일과 같으면 그것을 3으로 약하고 4분의 3일에서 감한다. 정삭 소여가 이 수 이상이 되면 1일을 증가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역주, 2011). 여기에서 '이 수'는 4분의 3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선명력에도 분명히 이것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원문은 다음 이미지 파일과 같습니다.

     

    '정삭 소여가 이 수 이상이면 또한 1일을 증가한다.' - 고려사 선명력

    어떤 연구자들은 '어느 쪽도 이론상으로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진삭은 원래 역학자의 면목유지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하고 있으며, 다른 역법칙을 어지럽히면서까지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하는데, 저는 이 부분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고려사》 선명력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라면 중국에서 선명력을 사용했을 때도 진삭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후의 수시력, 무려 현대에도 '진삭'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퇴망' 이라는 유사한 것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의 것을 따라야 한다' 라는 관점에서 제가 조금 보수적이고, 또 일본에서는 조선과 달리 꼭 '중국의 것을 따를 필요 없다'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선명력' 이라는 시스템 안에 있었던 것을 빼놓았는데 '그래도 틀리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해당 블로그에서는 민간 역자들이 '역법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설마 가능할까 싶습니다. 기본적인 천체 주기는 따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세부적인 입기일/입력일 입성은 어디에서 얻을 것이며, 일월식은 어떻게 예측할 것인지. 역시 선명력법을 어디서 구해와서 역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는 쪽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아무리 민간 역자라도 이 '진삭'을 몰랐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차라리 선명력을 필사하다가 이 부분을 놓쳤을 가능성 정도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역법을 몇 대(햇수로 따지면 800년)에 걸쳐 써 오면서 각 부분 부분에 빠삭해진 카모가와 민간 역자들의 차이점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조선에서도 수시력 도입 초기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선명력으로 추보했고, 시헌력 도입 초기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민간에서는 그 현상이 더 심했을 것입니다.

    4.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일본이 아니라 역 계산을 하는 다른 나라, 대표적으로 중국과 조선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당시 중국과 조선은 선명력이 아니라 수시력을 사용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의 중국이나 조선에서 사용하던 수시력을 적용했을 때는 또 상관이 없어집니다(유경로 외, 1973, 칠정산을 기준으로 계산함). 일단 '진'을 쓰지 않고 '퇴'를 쓰는 것도 있지만, 수시력의 방법대로 계산하면 윤달이 윤 12월도 윤 1월도 아니고 윤 2월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조선 같은 경우 애초부터 '중국의 역서와 차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든지 '중국 역법을 기준으로' 역을 계산한다든지 하였는데(박권수, 2013), 이번 카이레키 문제에 대해서 조사하다 보니 일본의 경우 딱히 그런 게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명력을 몇백 년 넘게 써 오면서 차이는 날 대로 나고, 24절기의 경우 그 당시 기준 무려 하루 이상의 오차가 발생했던 듯합니다. 발생한 오차는 당시 수시력 기반의 역법을 사용하고 있던 중국 역서와의 차이를 불러옵니다. 당연하지만 삭망의 경우 관측하기 쉬운데다가 일식, 월식의 날짜를 맞춰야 하므로 오차를 조정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24절기의 경우 하루이틀 정도의 오차는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동지일이 차이나는 건 좀 심각하긴 하지만요. 선명력 사용 말기(1600년대)에는 절기의 계산에서 무려 이틀 정도의 오차가 발생했다고 합니다(姚傳森, 1998).

    수시력 계열 역법 및 선명력으로 계산한 1583년 달력 비교

    같은 달인데 중국, 조선은 2월, 일본은 윤 1월이냐 1월이냐를 따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주성이 아닐까요? 자주성이라고 부를 거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 겁니다.

    정리를 해 보자면 같은 달이 각각 조선에서는 12월, 1월, 2월, 윤 2월, 일본의 조정 달력에서는 12월, 1월, 윤 1월, 2월, 일본의 민간 달력에서는 12월, 윤 12월, 1월, 2월이었던 것입니다.

    5. 정리

    텐쇼 10년 (1582년), 일본에서는 카이레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조정 달력인 쿄력에서는 윤달을 윤 1월로 두었고, 민간 달력인 미시마력에서는 윤달을 윤 12월에 둔 문제였습니다. 조정의 음양사들은 이 문제를 두고 오다 노부나가와 대립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역법 상의 이해를 자세하게 짚어 보았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진삭을 했느냐 안 했느냐' 에 달려 있었고, 조정의 역서에서는 진삭을 한 것을 기준으로, 미시마력에서는 진삭을 하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계산했던 것입니다. 일부 앞선 연구자들은 진삭을 하는 것은 역학자의 면목 유지 문제였으며, 양쪽 모두 이론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역시 선명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원래부터 '진삭을 하는 것이 맞았기에'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이 문제가 일본이 아니라 역 계산을 하는 다른 나라, 대표적으로 중국과 조선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중국과 조선이 사용하였던 수시력에서는 윤달이 1583년 윤 2월로 계산됩니다. 이것은 중국과 조선의 역서와, 일본에서 사용하였던 역서가 서로 달랐으며, 일본은 거기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선에서는 자국 역서의 정확도보다는 '중국의 역서와 차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해 왔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뭐, 저는 애초부터 '자주성' 같은 단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오히려 자주성을 강조하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증명되는 '자주성'이 과연 의미있을까요?

    6. 참고한 자료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역주, 2011, 국역 고려사: 지, 경인문화사

    유경로, 이은성, 현정준, 1973, 칠정산내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서울)

    姚傳森, 1998, 中國古代曆法, 天文儀器, 天文機構對日本的影響, China Historical Materials of Science and Technology Vol. 19 No. 2 pp. 3-9

    박권수, 2013, 조선의 역서(曆書) 간행과 로컬사이언스, 한국과학사학회지 Vol. 35, pp.69-103

     

    이하의 자료는 웹페이지입니다. 위의 선명력 및 칠정산을 가지고 충분한 검증을 거친 뒤 참조했습니다.

    暦, 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2020년 9월 23일 최종 수정, 2020년 12월 29일 접속, ja.wikipedia.org/wiki/%E6%94%B9%E6%9A%A6

    『晴豊記』, 위의 웹사이트에서 재인용

    天正十年改暦問題, Consume Mind, 2014년 10월 21일 최종 수정, 2020년 12월 29일 접속, seesaawiki.jp/consume_mind/d/%C5%B7%C0%B5%BD%BD%C7%AF%B2%FE%CE%F1%CC%E4%C2%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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